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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여성의 경제적 지위는 여전히 OECD 꼴찌"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6766

김창환 교수님의 시사인 기고글. 해당 논문이 출판되면 찾아 읽어보자. 


(중략)

성차별을 보여주는 일련의 통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세대 간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젊은 남성이 있을 수 있다. 장년층 이상 구세대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지만, 여성의 높은 대학진학률에서도 드러나듯 청년층에서는 성별 지위가 역전되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반론도 있다. 통계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풀타임 노동자 중 여성의 소득이 낮은 이유는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쌓은 인적 자본이 미약하기 때문이라고 반론할 것이다.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노동시장에서 탈락할 확률이 높다. 오랜 기간 경력 단절 없이 노동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남성과 아무런 경험이 없는 ‘아줌마’를 같이 취급할 수 없다. 성역할 이론에 따르면 혼인한 여성의 노동시장 탈락은 가족경제의 효용 극대화를 위해 부부가 선택한 결과다. 가족 내부 분업을 통한 노동의 특화이므로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여성 차별 사회구조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이 반론의 타당성을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노동부의 2010년과 2011년도 ‘대졸자 직업경로 조사’ 원자료를 분석해보았다. 대졸자 직업경로 조사는 대졸 직후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젊은 세대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다면, 적어도 대학 졸업 직후의 고용이나 소득에 남녀 격차는 없어야 한다. 일부의 주장대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다면, 대졸 직후 여성의 직업 위계나 소득이 남성보다 높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 분석 결과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79%에 그쳤다. 여성의 소득이 여전히 21% 낮다. 대졸 직후 노동시장 참여율에는 남녀 격차가 거의 없으므로 이 격차가 통계에서 말하는 선택 편향의 결과도 아니다. 혼인과 경력 단절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분석은 미혼자로 한정했으므로 결혼과 출산 효과도 아니다. 필자가 미국 대졸 남녀의 소득을 비슷한 인구를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는 성별 격차가 전혀 없었다. 노동시장 경력 차이가 없고, 혼인과 출산 영향이 없는 극히 협소한 대상으로 한정해도 남녀 격차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결과는 노동시장의 여성 차별 구조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일부에서는 남녀 간의 전공 차이가 이러한 소득 격차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할 것이다. 남성은 소득이 높은 공학을 주로 전공하지만, 여성은 인문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공을 통제해보면 이런 반론은 기각된다. 남녀의 전공 차이가 소득 격차를 설명하는 정도는 1%포인트에 불과하다. 대학에서 똑같은 전공을 공부했어도 여성의 소득은 평균 20% 낮다.

대졸 남녀 소득 격차의 상당 부분은 한국 사회가 군 복무를 마친 남성을 적극 우대하기 때문이다. 군 가산점은 사라졌지만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산업의 대기업 정규직 직장을 얻을 확률이 여성보다 확실히 높다. 군 의무복무는 남성의 희생이라 할 수 있지만, 이 희생 이후 남성은 오랜 기간 노동시장에서 유무형의 혜택을 누린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는 교육대학 졸업자들의 노동시장 성취를 보면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 교사의 임용과 소득은 정부의 규제를 크게 받으므로 차별에 의해 성별 소득 격차가 발생하기 어렵다. 만약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가 구조적 차별이 아니라 측정되지 않은 남녀의 선택 차이 때문이라면, 교육대학 졸업자라고 일반대학 졸업자와 다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필자의 분석 결과 20% 이상 소득 차이가 나는 다른 분야와 달리, 교육대학 졸업 여성의 소득은 남성보다 단지 8% 정도 작다. 그나마 8% 격차의 대부분도 군 복무 남성의 호봉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가 큰 분야에서는 남녀 격차가 거의 사라져버린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 나타나는 남녀 격차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에서 나온다는 방증이다.

이상의 결과가 알려주는 바는 분명하다. 결혼·출산의 효과를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노동시장 차별이 존재한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어떤 선진국도 한국처럼 심각한 여성 차별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한국은 양성평등에 관한 한 계몽의 대상이 되는 개발도상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은 성차별적 구조의 하위에 위치한 피해자이고, 남성은 이 구조의 수혜자다. 여성혐오는 차별 선동의 대상이 있는 구조적 문제다. 사회적으로 경계하고 적극적으로 고쳐나가야 할 폐해다. 반면 남성에 대한 혐오적 표현은 구조적 약자의 저항 수단으로 사용되는, 그것도 소수의 수단으로만 사용되는 개인적 성향의 문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차별적 구조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연간 1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고등교육에서 남녀의 격차가 역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별이 지속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자원 낭비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