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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스시녀는 명백한 혐오단어이다.

스시녀는 혐오 언어의 다른 축이다. 김치녀와 스시녀는 모두 일베에서 생산된 용어이고, 스시녀의 동의어가 다름 아닌 탈김치녀이기 때문이다. 김치녀=남성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허영심이 많은 한국 여성:스시녀(탈김치녀)=더치페이를 잘하고 (남성의 재력 및 기타 정신적 요소로부터) 독립적인 개념있는 순종적인 여성. 이런식의 대립쌍이다. 스시녀라는 단어를 네이버와 구글에 검색하면 적어도 저 개념의 한 요소는 글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 [e기자의 그런데] 김치녀와 스시녀 그리고 '양성평등')

자, 이제 문제의 스시녀와 김치남 웹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현실에서 김치녀라는 용어를 쓰면 일베충이라는 의혹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스시녀라는 워딩 역시 최소한 이 언어의 맥락에 편승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 만화 내용을 1화부터 봐도 이러한 의심은 확증으로 굳어질 수 밖에 없다. '시어머니''더치페이','짐들기','엄한 자녀 양육'. 이 에피소들 밑에는 어김없이 "시월드 운운하는 무개녀 김치년들과 다르네요","한국여자들에게는 상상할수없는 더치페이가 일본여성들에게는 더치페이라니ㅠㅠ 일본여성을 찬양하는 이유같습니다ㅠ","캬~ 가방 하나만 있어도 남자들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어떤국가의 여자들과 정말 다른듯 하네요","맘충들 떼로 몰려와서 테러할까 걱정되네요" 와 같은 댓글이 높은 추천을 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만화를 비판하는 글에 대해 "제 만화는 여성혐오랑은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작가의 답변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참고로 이 작가는 한국 생활이 16년 차이고, 본인의 블로그글에도 무개념 한국여성을 비난하고 그와 대비되는 개념녀 일본여성을 찬양하는 댓글이 자주 달리는 터라 이를 몰랐다는 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http://sayaka.tistory.com/265 , 이 게시물을 보면 작가는 2005-2006년 무렵의 '된장녀' 라는 개념을 이미 접하였고, 댓글에도 한국여성에 대한 일반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심지어 오늘 해명이라고 내놓은 글이랍시고 한국의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심각하다며 내놓은 글들은 인터넷의 뻔한 여성혐오 레퍼토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설령 진정으로 본인은 '스시녀'를 그저 일본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이 워딩과 만화의 내용은 여성혐오의 도구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을 하는데 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자기 먹은 음식에는 자기가 돈을 내야하고, 짐은 여성과 남성이 나눠들며, 시어머니와 다정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물론 개별적인 맥락에서는 모두 맞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도 이면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진공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치페이와 시월드, 여성들의 의존성은 최근 여성혐오의 도구로서 빈번히 활용되는 주제들이고, 이런 주제와 혐오의 언사가 가득한 세상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작품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과 발언이 가져오는 사회적 의미들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또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그러한 구조를 보지 못하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 훌륭한 혐오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이 웹툰의 문제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혹은 예술을 작가의 의도와 분리해서 해석하는 것이 정당한가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작가가 매우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한국 여성정책 연구원에서 사회조사를 실시했는데 한국 남성 54%가 김치녀 등의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여성혐오는 일베만이 아닌 인터넷 전반에 깔린 상당히 대중적인 정서에 가깝다. 이러한 정서에 기대 인기몰이를 하려는 수작이 너무나도 뻔하다. 오늘 다시 밝힌 작가의 언변은 이러한 심증을 굳혀주기에 충분하다. "저는 위생과 안전을 제외하고 좀처럼 한국을 비판하지 않습니다만 한가지 더 추가하겠습니다. 남성인권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에 군대에 가지만 국가에게도 국민에게도 인정 못 받고, 제대하면 선배 밥사주세요에, 예비군에 학점, 스펙에 알바하느라 20대에 해외여행 한번 마음편하게 못 가는데 키 작으면 루저, 더치페이하면 남자답지 못하게 되고, 늦은 취업에 결혼시기가 되면 집도 준비해야하고, 평일에는 야근에 회식에, 주말에는 티비에 남성의 육아와 요리프로그램이 쏟아지지만 성인이 성인비디오도 떳떳하게 못보고.... 도대체 한국남자들... 안녕하시나요?"

만만치 않게 성차별 사회인 일본 출신의 여성으로서 이러한 한국사회의 혐오 정서를 활용해서 유무형의 이득을 취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너무나 천박하고 역겹다. 물론 이러한 '자신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명예남성의 출세전략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현재의 한국상황에서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어떤 맥락과 사회적 의미를 가지는지 성찰할 능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저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게 된 배경을 강조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지난해 인터넷 여성혐오 언어 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하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생님들, 여성민우회와 성폭력상담센터의 상근자들과 함께 일하고 온라인 공간의 혐오정서의 범위와 수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실제로 이 문제를 연구하는 기관에 대한 사이버테러와 정당하지 못한 민원제기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은 미래에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혐오정서가 높은 인구집단은 남성 청소년이었다. 66.7%의 남성 청소년들이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했고, 현실 여성의 36.6%가 김치녀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들이 성인이 될 10년 뒤의 한국사회가 정말로 우려스럽다. 일반적인 원인 분석대로 혐오의 원인이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와 정치의 문제에서 소외된 남성들의 여성들을 희생양 삼는 것에 있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인다면, 이 미래세대의 문제들과 더불어 여성혐오의 정도는 더욱 더 악화일로에 놓여 있지 않은가.